나의 밍..


밍이 죽고 난 후, 나는 이제 다시 이전처럼 살아갈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부드러운 하얀 털의 느낌, 동그랗게 말린 등, 내 배 위에서 곤히 잠들었을때야 비로소 쭉 펴지던 긴 뒷발.. 샐쭉한 성격이라 내가 놀자고 쫓아가도 도망만 다니던 밍은 내가 마루에 배를 깔고 비디오를 보느라 정신없을 때면 어느새 살금살금 다가와 등에 올라앉곤 했었다.

처음에 커다란 상자로 집을 만들어주었는데, 며칠 지나니 푹신한 쿠션을 발판삼아 상자 끝에서부터 도움닫기를 한 후에 가볍게 뛰어넘었다. 몇번 다시 상자안으로 넣어주다가 나중에는 그냥 온 집안을 돌아다니게 놓아두었는데, 쉬는 꼭 하던 곳에다만 했다. 밍은 똑똑했다. 어쩌다 내 이불에 쉬를 했는데, 그 다음부터는 쉬가 마려우면 꼭 이불 위로 올라왔다.

귀가 커서 그런지 너무 예민해서, 조그만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고 구석으로 숨었다. 어느날 밍에게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서 집앞 강가로 산책을 데리고 나갔다. 바람이 불고 온갖 세상의 소리가 들려왔는데, 밍은 그 많은 소리들에 좀 괴로워하는 것 같았다. 집안에서 두 손바닥위에 올려놓고 창가에 서면 밍은 꼼짝도 하지 않고 조용히 밖을 내다보았다. 나는 '저게 세상이야'라고 밍에게 속삭이곤 했다.

나는 밍이 있어서 많이 행복했다...

어느날 밍은 죽어 있었다. 평소엔 동그랗게 말려 숨겨져있던 네 다리는 쭉 뻗은 채로 굳어있었다. 나는 많이 울었다. 아무것도 더이상 즐겁지 않았고, 아무 얘기도 할 수가 없었다. 온갖 생각들과 기억들과 수많은 질문들이 끊임없이 머릿속을 오갔다.

'생명은 어디서 오고, 죽으면 어디로 가는거지?'

'영혼은 깃드는 거야'라고 그가 대답했다.

'죽는다는 건 살아가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거야. 영혼은 끊임없이 흐르고, 변화하고, 세상 모든 것에 깃들고, 또 떠나가지. 억지로 할 수 있는 건 없어. 그저 흘러가는 대로 지켜보는 거야'

let it grow.
let it flow.
let it go.

밍은 나무가 되었고, 땅이 되었고, 또 나의 기억의 한 부분이 되었다.

나와 있었던 시간이 행복했었다면 좋겠다.

2000.12.27

Eric Clapton. Let It G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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