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마을 사람들

노화남(盧和男)

- 1975 가을 예맥문학(濊貊文學) 1호 p.70-81

구청 직원이 일러준대로, 동생의 죽음을 확인하는 서류에 도장을 찍어줄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 나는 비선마을을 찾아갔다.

비선(飛仙)마을, 그것은 내가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낸 꿈속같은 마을이었고 이제 객지생활 20여년만에 처음으로 다시 찾는 고향 땅이었다. 전화 중계소 앞에서 버스를 내리면 얕으막한 언덕이 온통 자두밭이었고 그 자두밭 옆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가다 내리막길에 접어들면 관악산에서 시작되는 깨끗한 물줄기가 맑은 시내를 이루어 한강으로 흘러들었다. 그 냇물엔 탄탄한 돌다리가 놓여있었는데 그것은 비선마을 동구(洞口)구실을 하고 있었다. 산이라고 하기엔 너무 낮으막한 구릉이 마치 쌀을 까부는 키의 모양으로 마을을 싸 안고 있는 아늑하고 포근한 전형적인 농촌이었다. 서울특별시의 행정 구역에 속해 있으면서도 석유 등잔을 켜고 살며 두레박으로 우물물을 길어 마시는 마을이었다. 30여호가 넘는 초가집과 군데군데의 기와집이 이마를 맞대고 모여 앉은 마을 뒷동산은 온통 잔솔밭이고 양쪽 언덕사이에 꽤 넓은 논과 밭이 펼쳐져 있었다. 선녀가 하늘로 날아오른 마을이라고 동네 할아버지들이 자랑하던 내 고향이었다. 저녁상을 물리고 뒷산에 오르면 건너편엔 손에 닿을 듯 남산의 불빛이 가까왔고, 마포 강변의 불빛이 한강물에 담겨 출렁거렸다. 철교를 건너 식식거리고 달려온 기차가 노량진역에서 짧고 길게 기적을 울린 후 연기를 끌며 인천 쪽으로 사라지면 전차길을 따라 하늘에선 파란 불꽃이 튀는 밤, 우리는 멍석을 깔고 앉아 싸한 모깃불 냄새를 맡으며 갓 쪄낸 옥수수를 뜯었다.

20년이나 잊고 있던 고향을 찾는 설레임은 동생의 죽음을 확인하고 때늦은 사망신고를 해야만 한다는 거추장스런 일조차 잠시 잊게 만들었다. 그러나 버스에서 내려 마을로 들어가는 길을 찾다가 나는 전혀 낯선 도시에 와있는 불안에 휩싸이고 말았다. 자두가 익던 언덕 위엔 키 높은 빌딩이 그 우람한 어깨를 하늘로 추스리며 서 있었고 언덕을 넘는 샛길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나는 잠시 인도에 서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낯익은 건물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곧 빌딩이 서 있는 언덕 밑으로 넓은 아스팔트길이 마을 쪽을 향해 뚫린 것을 알았다. 탄탄한 아스팔트 길을 몇 걸음 걸어가며 나는 다시 불안해졌다. 아, 마을이 그동안 제 모습을 그대로 지키고 있지는 못하겠구나. 이 넓은 길이 마을까지 뚫렸을테고, 마을 집집마다 전깃불이 켜졌을 것이며, 수돗물을 마시게 되었겠고, 또 더 많은 집들이 더 높이 지어졌겠구나. 착하고 순한 마을 사람들의 생활도, 어쩌면 그 따뜻하던 인정도 많이 달라졌을지 모르지.

그러나, 동구를 향해 걷던 나는 그 자리에 우뚝 서고 말았다.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비선마을이 아니였다. 아니 그 비선마을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돌다리가 있던 마을 어귀에 거대한 대문이 버티고 서 있었고 그 대문을 중심으로 양편에 높은 철책이 둘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철책 안에는 냇가에 서 있던 한 여름 미루나무보다 몇배나 높은 빌딩들이 우뚝 우뚝 솟아 있었다. 그 높고 하얀 빌딩들은 제각기 옆구리에 커다란 아라비아 숫자를 붙이고 자랑스럽게 버티고 서 있었다. 그제서야 20년이란 짧지 않은 세월이 내 앞에 벽처럼 막아서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놀라움이 신기함으로, 그리고 이내, 모래성으로 막았던 냇물이 한꺼번에 터지던 어린날, 그 걷잡을 수 없던 절망으로 바뀌어갔다. 나는 길 옆에 우두커니 서서 한참동안 넋을 잃고 이 거만한 빌딩의 숲을 지켜보고 있었다. 거대한 아파트단지는 아름다운 내 고향 비선마을을 가뭇없이 뭉개버린 것이다. 저 호화로운 아파트의 건물 안에 가난하고 착한 비선마을 사람들이 살 수는 없을 것이었다.

고향을 잃어버린 슬픔을 삼키며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아파트의 주변엔 비선마을의 행방을 물어볼만한 집은 하나도 없었다. 모두 어디론가 밀려나간 것이 분명한 일이었다. 나는 오던 길을 되돌아나왔다. 어디로 가겠다는 생각도 없이 문안으로 들어가는 시내버스에 올라탔다.

버스가 노량진 역을 지나갈 때까지 나는 줄곧 창밖만 내다보았다. 올 때와는 달리 길 양편에 늘어선 새로운 건물 중에도 낯익은 옛날 기와집이 한 두채 끼어앉은 것을 발견했지만 그것들마저 대형의 간판으로 지붕이 반쯤 가리워져서 생소하게 느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터무니 없이 바뀌어버린 낯선 땅에서 25년전에 죽은 동생을 기억해 줄 사람을 어디서 찾아 낼 수가 있을까. 비선마을의 착한 사람들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나는 눈을 감아버리고 말았다.

갑자기 누군가가 큰 소리로 외치는 말이 들렸다.

「조용한 차내에 잠시나마 소란을 끼쳐드리게 되어 죄송천만입니다. 저는 영등포에 자리잡고 있는 동림물산의 선전원으로 오늘 여러분께 잠시동안 동림바늘을 소개해 드리고자 차에 올랐읍니다.」

나는 눈을 감은 채 그의 말을 들었다. 그것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C시의 시내버스 안에서도 가끔 들을 수 있는 판에 박은 듯한 외판원들의 대사였지만 어딘가 숙달되지 않은 어조였다. 그런데다가 그의 대사는 애조를 띈다던가, 호소력이 있다든가 하는 보통 외판원들의 기술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서 몇 귀절씩 반도막이 나버린 느낌이었다.

「…그 옛날 심청이가 임당수 깊은 물에 꽃같은 몸을 던지기 전, 눈먼 아버지의 누더기 이불을 마지막으로 꿰매던 이 돗바늘과, 갑순이가 군대가는 갑돌이의 고고 청바지를 꿰매주던 중바늘, 울산 큰애기가 서울가는 삼돌이 손수건에 맘 변치말고 돌아오라고 곱게 수를 놓아 주던 수바늘, 이 영등포의 비선마을이 철거될 때 헤어지던 동네 사람들이 서로 나눠주며 눈물 흘리던 중바늘…」

나는 눈을 번쩍 떴다. 버스는 사륙신 묘지를 지나가고 있었다.

「이 바늘을 모두 모아 사시려면 시중상점에서 백원 한장을 주셔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더 잘 알고 계십니다만…」

건장한 체구였다. 버스 안의 장삿군 같지 않은 서글서글한 눈과 익살 섞인 입가의 웃음기까지 나는 한눈으로 읽어냈다. 나는 주머니에서 백원짜리 동전 한 닢을 꺼냈다. 그가 바늘갑을 들고 내 곁에 왔을 때 나는 불쑥 돈을 내밀었다.

「몇 쌈이나 드릴까요?」

「백원어치 모두.」

「네, 네. 고맙습니다. 또 필요하신 분 안 계십니까?」

나는 그가 돌아설 때 다급하게 물었다.

「비선마을을 아쇼?」

「아, 비선마을요, 알죠. 바느질 잘하는 마을이었죠. 지금은 모두 없어졌지만.」

아, 그래, 비선마을 여자들의 바느질 솜씨, 그 생각이 왜 이제야 떠올랐을까. 비선마을 아낙네 들의 바느질 솜씨라면 영등포 바닥뿐만 아니라 문안에서도 알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는 솜씨들이었다. 팔월 한가위를 달포쯤 앞투고부터나 정월 초하루 명절을 앞둔 한달은 비선마을 여자들의 바느질 품이 한철을 만나는 때였다. 밤늦게까지 남포관 밑에 모여 앉은 여자들이 바느질을 할 때 따뜻한 인정은 바늘쌈지에 담겨 오갔다. 비선마을 집집마다 반지고리에는 규중칠우가 정연하게 담겨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장롱속에 언제나 단정히 놓여있던 반지고리와 그 반지고리 안에 가득 담긴 바늘이며 실패, 자, 가위, 인두, 골무를 생각했다. 특히 골무는 큰 것, 작은 것, 붉은 것, 푸른 것, 노란 것, 흰 것들이 저마다 에쁜 모습을 자랑하며 담겨 있었는데 어머니께서 이것들을 얼마나 소중하게 다루셨는지 모른다.

버스가 한강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다리 왼편으로 여의도뻘에 새로 짓는 아파트의 숲이 석양에 뿌옇게 흐려보였다. 모래 벌판에 끝없이 펄쳐졌던 땅콩밭이 생각났다. 석달 동안의 피난 생활에서 돌아와 땅콩 이삭을 주우러 갔을 때 밭고랑에서 썩어가는 시체들을 보고 질겁을 해서 맨발로 돌아오던 어린시절, 그 때 발밑에 밟히던 뜨거운 모래의 감촉을 나는 생각했다. 그 모랫벌이 하나의 웅장한 도시로 형성되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갑자기, 이제는 잃어버린 고향의 내 유년기가 가슴을 적시기 시작했다. 용산역 앞에서 내린 그를 무턱대고 나는 따라 내렸다. 그리고 또 다른 버스에서 아까와 똑 같은 어조로 바늘을 선전하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영등포의 비선마을이 철거될 때 동네 사람들이 서로 나눠주며…」

나는 또 한번 가슴이 뭉클해 졌다. 「비선 마을」, 「동네 사람들」, 그 단어는 촉촉히 젖은 내 가슴에 다시 비를 뿌렸다. 마침내 나는 갈월동에서 내린 그의 소매를 잡았다.

「많이 파셨오? 심청이의 바늘.」

그는 잠시 어리둥절한 눈길로 나를 쳐다보더니 금시에 쌕 웃으며 받아넘겼다.

「안팔리는데요, 허기야 요즈음 바느질 하는 에펜내들이 몇 되나요?」

나는 그에게 비선마을의 이야기를 물어 봐야 되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바로 그 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재봉틀 바늘이 휠씬 잘 팔릴텐데. 」

「그럴지도 모르죠, 그런데 녀석이 바늘을 시작했으니.」

「예? 」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

그는 육교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를 따라 육교를 올랐다. 아이를 업은 꾀죄죄한 여자가 찌그러진 양재기를 앞에 높고 무릎을 꿇은 채 앉아 있었다. 그녀의 엉클어진 머리가 거의 땅에 닿을 만큼 숙여져있고 아이는 제어미의 앙상한 등에서 잠이 들어 있었다. 주머니에서 10원짜리 동진을 꺼내 양재기에 던졌다. 여자는 동전이 양재기에 떨어지는 쨍그랑 소리에 몸을 약간 떠는 듯 움직이는 것 같았으나 땅에 쳐박은 머리는 여전히 꼼짝도 안했다. 육교를 내려오면서 나는 바늘 장사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옛날 비선마을 여자들은 바느질을 참 잘했죠. 」

그는 고개를 돌리며 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비선마을에 사셨오, 형씨? 」

「예, 어린시절을 거기서 보냈죠, 이젠 없어졌더군요. 동생의 죽음을 기억 할만한 사람을 찾으러 갔다가 그냥 돌아오는 길이죠. 」

「예? 」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

「재미있는 분이군요. 그런데 형씬 지금 날 따라오시는 겁니까? 」

「그는 가방을 오른 손으로 옮겨 들으며 말했다.

「형씨한테 끌려가고 있는 거죠. 말솜씨가 재미 있으시던데요? 」

「오늘 처음 나와 본 장산데 괜찮게 한 셈이군요. 허긴 장사꾼 따로 있는건 아니니까. 그러니까 뭐랄까. 형씬 금방 내 팬이 되신 셈인데.」

그가 큰 소리로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그의 눈빛이 차츰 따뜻해지고 있다고 느꼈다. 그의 얼굴에서 나는 서울 사람들 특유의 무관심과 냉정함, 그리고 도저히 움직일 것 같지않은 안면 근육대신 손바닥에 퍼진 땀같은 촉촉함과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일 발견했다.

「형씬 허술한 구멍이 숭숭 뚫려서 사람을 많이 사귀시겠읍니다. 잠깐 얘기좀 나눴으면 해서. 」

「형씨도 그점은 마찬가진데요. 이 바닥에서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 이렇게 갑자기, 이렇게 빠르게 얘기가 통한다는건 혼한 일이 아니죠. 」

우리는 가까운 골목의 허술한 술집에 마주 앉아 소주를 마셨다. 핏줄에 소주가 퍼지기 시작하자 우리는 오래 사권 고향 친구처럼 거의 막히는 것 없이 이것 저것을 얘기하였다. 그는 나보다 훨씬 유쾌하게 떠들어댔다. 그의 말씨에는 전혀 주기가 섞이지 않은 차분함이 있었다. 나는 그에게, 당신은 서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사꾼, 차갑기만한 서울 사람같지 않은 점이 없어 돈은 못 벌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만 형씨, 서울 사람들이 별종일 수는 없는 겁니다. 제각기 제 세상 살아가다보면 자연히 남의 일에 관심 둘 겨를이 없구요, 아까 형씨가 말한 그 빈부의 차이란 것도 마치 당연한 것처럼 마찰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있는게 아닙니까. 조금전 육교 위에 꿇어 엎드렸던 여자의 양재길 보셨읍니까? 그 찌그러진 양재기에 동전 한닢 던져 주는 사람 흔하지 않죠. 그래도 그 여자는 매일 그곳에 꿇어 엎드려 있어요. 양주 한잔 마시고 그 잘난 호스테스 허벅지 한번 쓰다듬고 몇 천원씩 내던지는 놈팽이들이나, 5분만 걸어도 될 곳을 굳이 택시를 타야만 하는 유한마담, 하룻 저녁에 몇십만원씩 도박으로 날려버리는 부잣집 안방마님들과 비교하면 이게 어디 사람사는 세상인가 하고 놀라게 되지만 어쩔 수 없는 세상살이인걸 어쩌겠읍니까? 20층 30층 고층건물을 지으면서 <보행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어쩌구 베니다판에 써 걸고 하나도 미안해하지 않는 기업가들과 저 신림동 언덕 너머, 과천 골짜기에 움막 묻고 사는 사람들을 비교할 필요가 있을까요? 어두워진 시간의 무교동 술집과 답십리 골목길의 순대국집을 비교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자가용 탄 사람과 입석버스 탄 사람을 비교할 필요도 없는 겁니다. 바로 그런 게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묘한 동기가 아니겠읍니까? 」

그는 소줏잔을 가볍게 비워냈는데 그가 술을 마시는 동작은 마치 가루약을 입에 털어넣고 물을 쏟아붓는 것과 비슷해서 나는 속으로 그의 둔한 미각과 든든한 위장을 부러워했다. 어떻게 보면 세상을 달관한 사람같기도 하고 또 간혹 튀어나오는 말 속엔 패배의식을 짙은 회색으로 칠하려는 의도가 섞인 것도 같았지만 그가 인생을 달관하기엔 아직 젊은 나이고 패배자로 보기엔 너무 건강하고 당당해서 나는 점점 그의 얘기 속으로 끌려들기만 했다. 주모가 두 번째 소주병을 상에 놓을 때 그는 시계를 드려다봤다. 나는 그제서야 여태까지 그의 얘기만 들었고 내가 그에게 하려던 말은 거의 꺼내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생각해냈다. 나는 적어도 굉장히 중요한 신상문제 때문에 그를 따라온것이 아닌가.

「그런데 형씨, 내가 왜 형씨를 줄곧 따라왔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 」

「크게 궁금하진 않아요. 내 생김새가 좀 유별난 데가 있고 내 말이 좀 웃기는 편이고 게다가 값싼 바늘을 팔면서도 희희낙락하는 편이니 형씨가 흥미를 느끼신게 아닐까요? 」

그는 별로 힘들이지 않는 투로 말했다.

「그런 점도 있겠죠.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게 있읍니다. 나는 지금 동생의 죽음을 확인해 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허지만 그 사람을 찾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형씨를 통해서 어쩌면 찾아낼 수 있을 것도 같거든요. 」

그는 얼른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건너다보았다.

「형씬 아까 버스안에서 비선마을 얘기를 했어요. 그 비선마을이 이젠 없어졌죠. 얕으막한 초가집들과 우물과 뒷산의 잔 소나무들이 모두 없어지고 옆구리에 숫자를 단 아파트 건물들이 거만하게 서 있는 겁니다. 째지게 가난한 비선마을 사람들이 그 안에 살 것같진 않더군요, 아니 결코 그 호화로운 아파트 안에 그들은 살 수 없읍니다. 그러니 동생의 죽음을 확인할 사람을 찾을 수가 없고 잘못했다간 죄 없는 내가 큰집 신세를 지거나 생돈으로 벌금을 물어야 할 입장이 된 겁니다. 」

그는 웃음기를 버리고 정색을 했다. 턱에 양손을 고이고 내 말을 듣는 것이었다.

「무슨 소리죠? 꼭 추리 소설의 한 부분 같아서.」

「그럴 겁니다. 내게 동생이 하나 있었죠. 세상에 나온지 일년도 채 못되어서 녀석은 전쟁을 만난 겁니다. 피난길에서 하필 등창을 앓다가 죽었는데 녀석이 죽은지 사반세기가 되어가는 지금 신체검사 통지서가 제게 날아 들었어요. 처음엔 허허 웃었죠. 사자(死者)를 부르는 관의 위세가 너무 당당해서 웃음이 나오더군요. 그런데 약 보름 후에 나는 당황했읍니다. 파출소에서 호출장이 왔어요, 명령 수령인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거죠. 본서에 넘겨진 후에 담당 형사에게 사정을 얘기했죠. 형사는 눈을 부릅뜨더군요. 호적엔 엄연히 살아있으니까 소집통보가 온 것이 아니겠느냐. 여하튼 당신은 법규대로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이겁니다. 」

「아하, 사망신고가 안됐었군요. 」

「네, 그 호적이 문제였읍니다. 환도 후에 우리는 고향을 버리고 객지인 C시로 돈벌이를 갔거든요. 그동안 수복지구를 돌며 군수품 장사를 하면서 돈 벌기에 여념이 없었으니 그까짓 호적을 거들떠 볼 생각도 안 했고 죽은 동생은 20년이 넘도록 호적 갈피에서 살아남은 거죠. 형사는 내 동생이 죽었다는 심증을 굳혔는지 한가지 방안을 가르쳐주더군요. 본적지에 가서 사망신고를 하고 그 호적등본을 제출하라는 것이었읍니다. 3일간의 여유를 준다기에 부랴부랴 영등포 구청엘 가서 절차를 알아봤더니 그게 또 쉽질 않았어요. 동생녀석이 죽었다는 객관적인 입증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 당시 이웃에 살던 사람들의 확인보증을 세 명이나 받아오라는 겁니다. 그래서 부지런히 비선마을을 찾아갔죠. 그러나 비선마을 사람들은 커녕, 마을의 모습조차 찾을 수 없으니 난감한 게 아닙니까? 그런데 형씨가 버스에서 비선마을 얘기를 한겁니다. 귀가 번쩍 띄더군요. 」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재미있는 얘기군요. 죽은 자를 확인하라. 소설 제목 같은데요. 그러니까 형씨 동생은 지금도 이승과 저승 사이를 방황하는 신세가 됐네요. 아직 염라대왕 앞에 입적 신고도 못했을 게 아닙니까? 」

그는 소리내어 웃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읍니까? 풀리겠죠. 아니 풀릴 겁니다. 나는 비선마을을 모릅니다. 그러나 비선 마을에서 쫓겨난 친구를 하나 알고 있죠. 남이 생각하면 좀 못났다고 할만큼 착해빠지기만한 친구죠. 」

나는 우선 조금 마음이 놓였다. 비선마을의 친구. 착한 친구, 그는 분명히 나와, 내 동생의 죽음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도장을 눌러 줄 것이다. 나는 서둘렀다.

「어디 삽니까, 그 친구가. 아, 참, 이름은 어떻게 되나요?

「갑자기 조급해 지셨군요. 걱정마십시요. 매일 만나는 친구니까요. 오늘도 이제 장산 다 한 거니까 그 친구한테 가봐야죠. 자, 술 듭시다. 」

나는 갑자기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내 자신을 깨닫고 조금 멋적은 생각이 들었다. 비선마을에 대한 추억과 서글서글하고 재미있는 그의 사람됨에 끌린 것이 아니라 다급한 내 일로 해서 그를 붙잡고 늘어졌다는 인상을 내보여준 것 같아서였다. 우리는 조그만 소줏잔을 서로 짤가닥 부딪쳤다. 그리고 단숨에 소줏잔을 비워냈다.

「함께 가봅시다. 아마 그 친구라면 비선마을에 살던 사람들의 행방을 대강 알고 있을 겁니다. 어쩌면 형씬 옛날 어린 시절의 죽마고우를 다시 만나는 기쁨을 맛볼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놈이 기이하게도 바늘 장사를 하고 있지만 녀석이나 저나 장사에는 크게 인연이 없는 모양이죠. 오늘 겨우 쉰 쌈지 밖에 못 팔았으니 어디 장사란 말이 어울리기나 할까요? 」

「아, 같은 일을 하는 친구시군요. 」

나는 아까보다는 휠씬 여유를 찾은 음성으로 말했다.

「그런 셈이죠. 녀석이 처음 바늘장사를 한다기에 이상하게 생각했어요. 밑천이 조금 밖에 안든다는 잇점도 있지만 그 대신 뭐 남는게 있읍니까? 몽땅 버는 돈이라도 시원찮을 매상고인데 그나마 원가 빼고 점심값 제하면 고작해야 하루 칠 팔백원 벌이죠. 가령 칼이라든가 수저, 지갑, 가구용 왁스 따위는 단가도 높고 이익도 꽤 많은 편인데 내가 밑천을 좀 대준다고 바꿔보라 해도 막무가냅니다. 나중에 비선마을과 바느질에 얽힌, 어쩌면 옛날 전설같기도한 얘기를 놈한테 듣고 나서야 바늘장사를 계속하는 녀석의 심중을 다소 이해하게 됐읍니다만. 그래서 내가 선전 문귀에 하나 더붙였죠. 비선마을 얘기를 말입니다. 그게 형씰 만난 인연을 만들어 주었군요. 아무튼 잘된 일입니다. 」

그는 마치 자기의 옛 친구나 만난 것처럼 반가와했다. 나는 그가 내미는 손을 잡으며 아까와는 다른 뜨거움이 내 손 가득히 고이는 것을 느꼈다.

 

우리가 어깨동무를 하고 비선마을의 동구 앞에 돌아왔을 때 날은 완전히 저물어서 차츰 짙은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그 어둠 속에 창문마다 하얀 불을 밝힌 아파트의 건물들이 유령의 성처럼 차갑게 서 있었다.

「그러니까 형씬 여기서 발길을 돌렸다 이거죠? 역시 비선마을 사람들의 그 허약한 기질이 형씨에게도 그대로 남아있는 겁니다. 물러서기만하는 천치같은 나약함 말입니다. 형씨가 만일 여기서 되돌아서지 않고 저 대문 안으로 들어섰더라면 알만한 사람을 하나 만났을 겁니다. 비선마을의 통장, 혹부리 영감이라면 기억이 나시겠읍니까? 자세한 건 나도 잘 모르지만 비선마을 터에서 쫓겨나지 않고 그대로 몸을 붙인 사람은 그 영감밖엔 없어요. 」

혹부리 영감, 나는 그를 기억할 수 있었다. 술에 젖은 듯한 벌건 얼굴과 뭉툭하고 빨간 빛이 진한 코, 목 부근에 매달린 징그러울만큼 큰 혹, 작달만한 체구, 영감은 퍽 오랫동안 비선마을의 통장직을 맡아보고 있었지. 조금 욕심이 과한 점도 있었지만 마을 일을 곧잘 돌보기도 했다.

「또 한가지 애매한 사실이 있죠. 비선마을 사람들은 모두 제 고향을 버렸지만 결코 먼 곳으로 떠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뒷산 너머의 골짜기에 머물러 살고 있죠. 일종의 무허가 건물이라고 할 판자집이나 움막을 짓고 벌써 3년째 머뭇거리고 있죠. 」

우리는 철책옆으로 난 길을 따라 마을 뒷산 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고향마을 외곽을 빙 돌며 나는 옛날 얘기처럼 되어버린 마을과, 사람들과 그리고 내 유년기의 그리움을 촉촉한 손 안에 쥔 조약돌처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찾아가고 있는 비선마을의 옛 친구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내게 그 친구의 이름을 알려주는 대신 착하고 순한, 그러면서 속으로 강인함을 지닌 사람이라고만 얘기할 뿐 더 자세한 것은 그 친구를 만나봄으로 해서 더욱 강열하고 진하게 느껴보라고만 할 뿐이었다. 아파트에서 비치는 불빛과 철책 중간 중간에 매달린 외등이 쏟아붓는 불빛이 좁은 길을 밝혀 주어서 조금 술에 취한 우리들은 별 어려움 없이 뒷산으로 이어진 언덕 좁은 길을 따라갈 수 있었다. 초가을 밤 상현 달이 우리 머리 위를 비스듬히 비추면서 따라오고 있었다.

 

남포불에서 나온 석유 그을음과, 우리들이 토해낸 담배 연기가 뒤섞여 좁은 방안엔 자욱한 어둠이 서려있었다. 가슴이 자꾸만 답답해오는 것은 다시 마셔댄 소주기운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석민(朴錫敏)은 원래 술을 마시지 못한다고 했지만 내가 건네준 몇잔을 사양않고 마시더니 금시에 얼굴이 붉어졌다.

조금 전의 서먹서먹 함이나, 경어와 해라를 섞어쓰던 어색함이 몇잔 술로 풀어져 버리고 우리는 다시 이웃에서 자란 어린 날의 친구로 가슴을 열고 얘기할 수 있었다. 바늘을 팔던 친구는 우리의 기쁜 해후를 축하한다면서 연거푸 술을 들이키다가, 돈 많은 부자들을 욕하다가, 또 무력하고 천진하기만한 비선마을 사람들을 나무래다가 제 풀에 곯아떨어져서 라면 상자를 베고 비스듬히 쓰러져버렸다.

「여하튼 잘왔다. 다시는 못 만나나 보다 하고 가끔 네 생각을 했지. 이렇게 불쑥 나타나니 뭐랄까, 이런 내 꼴이 미안하고 우리가 함께 오르던 동산이 없어져 안타깝고, 하지만 반갑구나. 」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고향을 훌쩍 떠나버린 후 고향이 이토록 몰락 해 버릴 때까지 먼 객지에서 살아가는 데만 허덕인 내가, 그나마 고향을 완전히 잊지 못해 그 고향 뒷켠에서 머뭇거리며 아쉬위하고 있는 그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우리는 마을을 지키려고 했지. 초가지붕과 좁은 길이 서울 특별시 라는 명예에 때를 묻힌다면 기와를 얹고 길을 넓혀서 마을의 체면을 세우고, 옥수수 대를 걷어버리고 부로크를 찍어서 반듯한 담을 쌓고, 수돗물을 끌고 전깃줄을 끌어들여서 서울 속의 부끄러운 시골을 벗어나서 이 마을을 지키려고 했어. 그리나 막대한 돈이 필요했지. 우리 마을엔 그만한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 주택회사에서 우리 마을에 눈독을 드린 것도 아마 그런 약점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일꺼야.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한데 뭉쳐서 꿈적도 안했지. 얼마나 정든 마을인데. 땅값이나 이전비까지 모두 밑지지 않을 만큼 준다고 회사에서는 은근한 협상을 해 왔지. 또 아파트가 완공되면 희망자에게는 입주권을 우선적으로 주겠다고 했어. 아무도 동의하지 않았지. 그러다가 통장 영감이, 왜 너두 알지, 혹부리 영감말야, 그 영감이 마을 사람들을 하나하나 설득시킨 거야. 호화로운 아파트에서 문안 사람들처럼 살 수 있다는 거였어. 하나 둘씩 주택회사의 매도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시작했지. 보잘 것 없는 마을의 초가집들이 매일 한 두채씩 헐린거야. 마을은 급속도로 폐허가 되었지. 끈질기게 버티던 사람들도 결국은 물러나고 말았지. 아파트가 완성되고 입주자들이 들어앉기 시작했지만 비선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입주신청조차 못하고 말았지. 아파트의 입주금은 우리들이 받은 집값 땅값을 모두 합쳐받쳐도 모자랄만큼 비싼 돈이었어. 모두들 분해하고, 안타까와하고, 눈물을 흘리며 한탄했지만 일은 모두 끝나버렸지. 통장 영감이 아파트의 수위로 취직되었다는 소문이 돌자 마을사람들이 몰려가 영감의 움막을 부숴버렸지만 그까짓 것이 뭐하는 짓이냐 말야. 받은 돈을 곶감꼬지 빼먹듯 그럭저럭 없애버린 마을 사람들은 처음에 임시로 움막을 지은 이곳에서 어느 새 오도가도 못한 채 이젠 행상이나 날품팔이꾼들로 굴러떨어졌지. 몇몇 약삭빠른 사람들은 그들이 받은 돈으로 곧 신림동이나 봉천동의 변두리로 옮겨 앉았지만 그들도 별 신통한 꼴은 못 보는 모양인지 가끔 여기 와서 한숨을 쉬고 넉두리를 하고 가지. 그 사이에 아버지는 홧병으로 돌아가셨고 재작년엔 어머니마저 돌아가셨어. 마누라는 한 달전에 내빼버렸지. 장사라도 해서 살림을 돕겠다기에 해보라고 시켰더니 어느 놈과 눈이 맞은 모양야. 너도 알텐데, 옥섭이 말야. 어릴 때 얼굴이 제법 예쁘장해서 소꼽놀 때마다 그 앨 찾이하려고 우린 가끔 타투지 않았어? 」

나는 그의 눈에 맺히는 이슬을 보고 외면을 해버렸다. 목이 꽉 메어오는 것을 감추기 위해 몇번이나 헛기침을 했다.

「저 녀석은 한 3년 전에 사귄 친구야. 속이 넓고 그대신 맺힌 데가 없는 것 같지만 친구가 뭔지 아는 놈야. 아이가 며칠째 시름시름 앓더니 오늘은 나를 영 안 떨어지려해서 하루 장사를 쉬려했더니 대신 바늘 가방을 들고 나간거야. 」

나는 그의 곁에 잠들어 있는 어린 것을 보았다. 아버지의 너그러움과 어머니의 고운 맵시를 빼 닮은 귀여운 아이였다. 무슨 말이던지 해서 그를 위로하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참, 동생의 호적 때문에 왔다구 했지? 그까짓거 뭐 큰 문제가 될라구? 죽은 놈이 어떻게 군댈 가니? 마을 사람들은 모두 밤늦게 돌아와서 새벽에 나가는 걸. 더구나 여기저기 골짜기마다 흩어져 살아서 서로 얼굴 보기도 힘든 형편야, 모두 살아가는데만 기를 쓰고 있지. 난 그들의 눈빛이 점점 차가와지고 매서워지는 게 소름이 끼칠 정도야. 도장이고 뭐고 찍을거 없이 내일 구청에 가서 호적계에게 몇푼 쥐어줘 봐, 쉽게 될꺼야, 그 까짓 호적. 가난하고 무력한 이 마을 사람들의 값싼 도장보다 몇 푼의 지폐가 훨씬 위력이 있을 걸. 」

그가 방문을 열어 젖혔다. 선선한 가을 바람이 방안으로 밀려 들었다.

「이제 곧 겨울이 오겠지. 춥고 지루한 겨울이.」

그가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비선마을의 뒷동산이 이쪽으로 등을 돌려대고 어둠 속에 앉아있었다. 그 너머로 아파트의 불빛이 후광처럼 훤하고 그 위에서 초가을 상현달이 일그러진 판잣집과 움막을 파르스름하게 비춰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