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여름 寧國寺에서 -

(1) 이 나무는 살아있다

이 절에는 1000년이나 되었다는 은행나무가 있다. 대웅전 앞마당엔 삼층석탑이 있고 내가 좋아하는 새로지은 누각이 있다. 나무가 아직 안말랐는지 단청도 칠하지 않아 노란 나무색이 그대로 살아있는 넓고 시원한 그 누각의 두번째 기둥에 기대어 앉으면 오래된 은행나무가 내려다보인다.

HAMA(with) + DRUS(tree) = HAMADRYAS (pl. HAMADRYADES)

이것은 나무의 요정을 일컫는 말로, 나무와 함께 태어나 나무가 죽을때 같이 죽는다.
에우리디케. 오르페우스의 아내인 그녀도 이 나무의 요정이었다고 한다.
저 은행나무의 요정은 그러니까 1000살도 넘었을텐데... 아직도 수많은 가지에 잎을 무성하게 달고 있다.
그녀가 느껴졌다.
휘감기듯 이어지고 끊어지고 또 이어지는 줄기와 가지의 선들.
거대한 밑둥과 뿌리. 잠시 삶이 주춤거렸을 옹이자국들.
아무 계획도, 욕심도 없이 그저 견뎌내어왔을 시간과 흔적들.
그 결과인 저 은행나무의 그로테스크한 모습.
그 굴곡들을, 그 선을 하나하나 따라가며 그녀가 되어본다.




2000.08.19
<< previous | next